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이런 죽음도...

슬기엄마 2012. 11. 23. 18:35

 

나는

암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지만,

매번 환자의 죽음은 낯설다.

 

가끔

어떤 이유로든

예전 내가 진료하던 환자들-지금은 돌아가신- 의 차트를 볼 일이 있는데

그 환자의 살아 생전,

그리고 돌아가시던 당시의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가시던 날 아침 회진 때 본 환자들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 나의 기분도 떠오른다.

어떤 죽음도 매번 힘든 일이다.

 

오늘은

나에게 그런 기억도 채 없는

36세 젊은 환자가

오늘 아침 갑자기 사망하였다.

2기초 유방암.

4번의 항암치료. 나랑은 5번 만난게 전부다. 항암치료할 때 4번. 그리고 항암치료 후 첫 종합검사 시 이상없다는 검사 결과 알려준게 전부다. 그리고 그녀는 외과에서 추적관찰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항암치료 받은지 1년이 채 안되었다.

재발을 검사하는 종합검사 1번했고 2번째 검사를 하기도 전이다.

 

그녀는 몇일전 배가 아파 소화기 내과로 입원했다가

뭐라 설명할 새도 없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서 중환자실에 입실했고

어제 오늘 몇차례 심정지 상태가 반복되다가 오늘 사망하였다.

그저께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던 날 시행한 골수검사의 일차 결과 상

급성 백혈병 혹은 유방암 재발이 의심되었으나 최종 결과는 아직 리포트되지 않았다.

골수에서는 뭔가 악성세포가 관찰되었다고 한다.

 

유방암 수술 후 사용하는 아드리마이신과 싸이톡산 중 싸이톡산의 후유증으로 급성백혈병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몇년 지나서 나타나는게 대부분이다. 발생 가능성도 매우 낮다. 그렇게 발생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표준 항암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환자에서 갑작스러운 상태변화의 원인은 유방암의 골수 전이일 가능성이 높다.

 

대개의 유방암은

하루아침에 상태를 나쁘게 하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하지 않는다.

암환자가 사망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병이 나빠져서라기 보다는 감염이나 신체의 다른 장기기능 저하 등의 이차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암세포가 증가하는 것, 암이 나빠지는 것 자체가 사망을 초래할 수는 있어도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환자에서는 재발과 동시에

몸의 면역체계에 갑작스러운 이상 신호가 발생하고

체내 다양한 싸이토카인들이 갑작스럽게 다량 분비되면서

온 몸의 장기와 세포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Cancer induced Hemophagocytic syndrome 이라는 진단명이 떠올랐지만

골수를 본 혈액내과 선생님은 그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내 짐작일 뿐이다.

 

오늘 아침 중환자실에 가서 환자를 보는 순간,

나는 이 환자가 1-2시간 이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어제 밤 기록된 차트와 검사결과를 보니

환자는 비록 몸 상태는 안좋아도 의식이 멀쩡해서 밤까지 가족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나

순식간에 심정지가 발생하고

기관삽관을 하고

혈압이 떨어지고

인공투석을 시작하고

온 몸에 피멍이 들고

헤모글로빈이 2로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항암치료 받을 때 아무 이상이 없던 분이다.

혼자 꿋꿋하게 치료 잘 받으러 다녔다. 그래서 남편을 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올 초에도

비슷한 환자가 한명 있었다.

 

30세 그녀는

갑작스러운 심장정지로 사망하였다.

말 그대로 그녀의 심장이 뛰지 않았다. 갑자기.

일차적으로 아드리아마이신 때문에 심장기능이 약화되고

항암치료 이후 방사선치료를 받으면서 방사선이 간접적으로 심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방사선치료 받던 중 

12일쨰

숨이 좀 차다며 응급실에 방문했다가

심장기능 이상으로 심장내과 중환자실로 입원했고

내가 아침 회진을 갔을 때까지만해도

명랑하게 이야기 잘 하고 나에게 '좋아지겠죠 뭐 걱정안해요' 했었다.

그녀는 몇개월된 아이와 남편을 남기고 아무 유언도 없이 그냥 떠나가버렸다.

ECMO를 걸 틈도 주지 않았다. 내가 회진 돌고 간 뒤 30분 만에.

 

드물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환자도, 가족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항암치료의 드물지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설명하지도 않았던 부작용.

 

그래도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내 마음에는 멍이 든다.

환자가 한명씩 죽을 때마다 내 마음에 멍이 든다.

무섭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