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마치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슬기엄마 2011. 2. 27. 21:04

마치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근대는 주체의 탄생으로 문을 연 시대이고 병원은 근대 임상의학의 탄생과 함께 주체의 몸에 대한 권력이 행사되는 공간이다. 푸코의 철학적 테제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병원인 것 같다.

땀으로 범벅된 초턴의 얼굴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팔을 내밀고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하고 당황스럽다. 지난번 인턴 선생님이 주사를 잘못 놓아 일주일 내내 팔이 아프고 저렸다는 말로 은근히 나에게 압력을 넣는 환자가 얄밉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

간경변으로 복수가 너무 많이 찬 환자에게 paracentesis를 시행한다. 나는 마치 여러 번 복수천자를 해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도구들을 챙기고, 굵고 긴 복수천자용 18번 바늘을 환자의 배에 꽂고 물이 나오는 걸 확인한 후 당당하게 병실을 나선다. 그런데 5분 뒤 병동에서 call이 온다. 선생님, 물이 나오지 않는데요
?

나는 병실로 달려가 바늘의 위치와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환자 position도 바꿔본다. 배에는 물이 가득한데 왜 물이 나오지 않는 걸까? 결국 담당 2년차 선생님께 연락한다. 와서 보시고는 복수를 받는 bottle 입구에서 tube가 꺾여 있는 걸 발견하신다. line을 똑바로 펴니 바로 물이 나온다. 내가 땀을 줄줄 흘리는 것만큼 환자의 배에서도 복수가 줄줄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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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per GI bleeding
으로 L-tube irrigation을 계속 해야 하는 환자 곁에서 잠시 졸다가 다시 irrigation을 시작하는데 saline이 들어가지 않는다. 허둥지둥 Tube를 더 넣어보고 빼보지만 마찬가지다. 환자는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고, 결국 나는 L-tube를 빼본다. 어느새 tube 끝이 clotting이 되어 막혀 있다. 다시 L-tube insertion을 시도하니 구역질이 나는지 또 피를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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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변 합병증으로 hepatic encephalopathy가 생겨 매일 dulphalac syrup을 먹고 관장을 하는 환자가 그렇게 배가 아파하는지 몰랐다. 내가 약속처방으로 묶어놓고 routine하게 내리는 order 하나에도 환자는 오전 한 나절이 힘들고 비참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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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몸에 손을 댄 환자가 괴로워하고 고통받을 때면 안절부절, 가슴이 두근거린다. ‘모든 걸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며 망설이다가 치료의 주도권을 잃고 원칙이 흔들리면 안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다가여러 과에 걸쳐 consult가 난 환자라면 order를 주도면밀하게 내서 환자를 덜 괴롭힐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약에 대해 좀 더 잘 알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텐데라고 반성하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병원 내에 있는 그 어떤 순간도, 나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환자라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싶다
.

방금 며칠째 상태가 계속 나빠지는 환자의 foley catheter change가 필요하다는 call이 왔다. 환자가 자꾸 의사를 부르고 괴롭히면 귀찮고 미워지는데 그때를 조심해야 한다는 한 동료의 말이 기억난다.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은데 밤마다 의사를 부르고 귀찮게 굴던 환자를 자신도 모르게 neglect했는데, off를 나갔다오니 arrest가 나서 expire한 상태였다고 했다. 방금 이 환자도 그렇다. 입원한 지 2주일이 되어가는데 매일 매일 환자가 힘들어하는 정도가 심해진다. 어서 가 봐야지. 인턴인 내가 그 환자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aseptic foley change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