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나는 어떤 경우에 달리는가

슬기엄마 2011. 2. 27. 20:59

나는 자꾸 irritable하게 움직이는 환자를 원망하며 한 손으로는 환자의 두 손과 배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환자의 턱을 붙잡고 있었다. 오늘따라 CT찍는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납옷을 입어서인지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것 같아 힘들다. 누워있는 환자를 내 몸으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 채 CT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끝나는 기색이 없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컴컴하게 어둠에 쌓인 방. 분위기가 이상해서 나는 누워있는 환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 몸무게에 짓눌린 채 괴로워하는 환자는 바로 내 남편. 아마 나는 가위에 눌려 꿈속에서도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나보다
.

의사가 되어 처음 근무한 신경외과에서의 한 달간 인턴생활, 그 사이에 내 몸에 각인(embodied)된 행위가 바로 이것, 움직이는 환자를 붙잡고 post-op CT 촬영이었던 것일까
?

불행하게도 지난 한달 동안 환자의 생명이 분초를 다투기 때문에 내가 뛰어다닌 적은 없었다. 내가 뛰어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았다
.

내일 수술할 환자의 sputum 10분 내로 검사실로 옮겨야 오늘 내로 AFB smear의 결과를 확인하고 수술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윗년차 선생님의 call. 나는 1층의 필름판독실에서 뛰쳐나와 다른 건물 8층에 있는 환자의 검체를 받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뛰어 올라갔다 다시 그 길을 달려 내려와 다른 건물의 지하 검사실로 뛰어야 한다. 그렇게 뛰는 와중에 응급실에서 call이 온다. 빨리 와서 환자의 CD를 가져다 PACS에 올려야 오후 회진 때 선생님들이 함께 보실 수 있다고 하신다. 검사실에서 응급실로, 다시 PACS 운영실로 CD를 들고 뛰어야 한다. “5, 10분내로를 외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다리품을 팔아 열심히 뛰는 만큼 과의 일이 진행되는데 차질이 없다
.

혹은 4년차 선생님의 호출, ****-44라는 번호가 찍힐 때면 잽싸게 주위에 전화가 있는지 찾고 전화를 한 후 달려야 한다. Hormone test를 하기 위해 시간을 맞춰 채혈하는 것보다 의국장의 전화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환자를 제쳐두고 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위계질서에 너무나 순종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이런저런 이유로 10분 뒤에 가면 안 될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면다른 인턴 시키고 빨리 의국으로 와라며 끊기는 전화. 나는 순간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서 인턴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며 말없이 뛰는 function만이 중요한 그런 존재인가
?

우리가 갖춘 시스템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보다는 현재 시스템의 한계를 인력을 동원해서 급한 대로 메우며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연 이 공간에서는 발전을 위한 비판적인 문제제기가 관통될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