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수현 4. 항암치료 1. 삶의 주기를 재조정할 것

슬기엄마 2011. 2. 27. 10:51

삶의 주기를 재조정할 것

 

항암제는 내 몸의 세포를 죽이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약이다. 요즘 나오는 표적치료제들은 치료 기전이 조금 달라서, 정상 세포는 죽이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죽이거나 혹은 암세포가 더 증식하지 않도록 억제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작용에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인 항암제들는 암세포 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 나를 지켜주는 면역세포까지도 손상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항암치료의 주기를 잘 알고, 그 시기에 맞게 자기 삶의 주기도 변화시키고 적응하여 지내는 센스가 필요하다.

 

항암제와 골수기능의 감소

 

대개의 항암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골수기능을 억제한다. 골수는 말 그래도 뼈 속에서 피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건강하고 좋은 피가 만들어져 전신적으로 순환이 되어야 내 몸도 건강할 수 있다. 항암치료 기간에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암제가 정상적인 골수까지 공격하기 때문에 항암제 주기에 따라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의 혈액 세포도 감소되었다가 회복되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게 되고, 항암치료가 반복될수록 골수의 회복 속도도 느려지고 회복하는 정도도 느려지게 된다.

 

혈액세포 중 백혈구는 우리 몸에 원래 있던 균 혹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균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하는 세포이다. 그러므로 백혈구 수치가 감소하면 균에 대한 저항성이 약화되고 쉽게 염증이 약화되어 폐렴이나 장염, 심한 설사병에 걸릴 수 있고 몸에 상처가 있거나 중심정맥관 등의 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관 주위의 피부도 벌겋게 변하면서 염증소견을 보인다. 이러한 염증이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몸에서는 열이 남으로써 그 싸인을 우리에게 보낸다. 그래서 열이 나면 병원에 와서 열이 나는 원인을 찾는게 중요하다. 초반에 그 싸인을 무시했다가 아주 위중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열이 나니까 임의로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 등의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나는 상황을 억제해버리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므로, 비슷한 상황에서 안 나던 열이 나면 일단 병원에 와서 담당 의사의 진료를 받는게 좋겠다.

스스로 주의하여 미리 열이 날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개인위생이 힘쓰기 (외출 전후로 손씻고 양치하기, 식사전이나 화장실 사용 후, 코를 풀거나 동물을 만진 후에 손씻기) 를 비롯해서 피부를 깨끗이 하기, 보습제를 발라 피부가 건조하여 갈라지는 일을 방지하기, 피부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기, 감기 걸린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기 등은 조금만 신경쓰면 나의 노력으로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실천 전략이 될 수 있겠다. 백혈구가 감소했다가 정상화되는 주기가 있기 때문에 예방접종이 필요한 경우에는 의사와 상의해서 접종이 꼭 필요한지, 접종을 하려면 언제 해야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항시 음식을 먹고 나면 가글을 하고, 평소에도 자주 가글을 하는게 폐렴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가글액 자체가 구토감을 유발해서 꺼려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생리식염수라도 가글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적혈구가 부족하면 빈혈로 나타난다. 일반 혈액검사에서 빈혈이 생기면 혹시 부지불식간에 출혈이 되는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상 혈액검사에서 빈혈을 발견하면, 여자의 경우 폐경이 될 때까지 생리를 하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씩 있는 정기적인 출혈로 인한 빈혈의 가장 흔한 원인이겠고, 남성의 경우에는 암 등의 출혈을 유발할 수 있는 병변이 위나 대장 내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만 암환자들은 치료기간 중에 혈액검사를 매우 자주 하기 때문에 항암제 주기와 관련하여 변화 추이를 보거나 다른 혈액 세포들도 같이 감소해있는지 여부를 보면서 출혈에 대한 적극적인 검사를 할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 항암제로 골수기능이 억제되어 빈혈이 생겼다면, 일정 수치 이하로 아주 낮게 떨어지지 않았을 경우 저절로 회복되기를 기다려볼 수 있고, 아주 낮으면 일시적으로 수혈을 하는게 필요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심한 빈혈은 어지러움증, 호흡곤란, 전신무력감 등의 증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빈혈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그런 증상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잦은 수혈은 드문 전염성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수혈을 꺼려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그 이론적 확률이 나에게 발생하면 100% 의 사건이 되므로 의사인 내가 그걸 무시하고 무조건 수혈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전체적인 항암치료의 스케줄을 고려했을 때 항암치료를 너무 힘들게 받게 되면 미리부터 다음번 항암치료가 힘들어지고 받기 싫고 몸과 마음이 괴롭다. 빈혈에 동반되는 증상이 해결되지 않으면 일상적인 생활 자체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힘들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우울해진다.

요즘에는 적혈구생성인지 촉진제(Erythropoietin)가 있어서 주기적인 수혈 대신 촉진제를 투여하여 적혈구의 생성 자체를 자극하는 약들도 있다. 헤모글로빈이 8g/dl~9g/dl 근처에서 애매하게 낮고 증상도 명확하지 않아서 반드시 수혈을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지만 이런 경향이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에 고려해 볼만한 약제이다. 항암치료 중에는 헤모글로빈을 10g/d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환자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고, 이런 적혈구생성인자 촉진제를 1주일에 한번씩 맞으며 한달에 헤모글로빈이 1g/dl 정도 상승하는 것이 적절한 약제 반응이라고 판단한다. 수혈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종 환자에게 투여해보기도 하지만, 역시 모든 약은 그 나름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이 적혈구생성인자 촉진제가 갖는 부작용도 있어서 빈혈이 있는 모든 환자에게 손쉽게 처방할 수는 없는 약제이기도 하다.

 

혈소판은 혈액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혈소판이 감소하면 출혈이 생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부에 멍이 들거나 팔, 다리에 고춧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붉은 반점이 생길 수도 있고 양치할 때 잇몸에서 피가 섞어 나오거나 소변이나 대변볼 때 피가 비치기도 한다. 생리 기간이 길어지거나 생리 기간과 관련없이 질 출혈이 있을 때에도 혈소판 감소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약제 중에도 장기적으로 복용했을 때 혈소판을 감소시키는 약들이 있으니 병용 투여하는 일반약의 목록을 잘 알고 있는게 필요하고,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했을 때도 일시적인 혈소판 감소증이 동반될 수 있으니,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에서 혈소판 감소증이 있다고 무조건 항암치료와의 관련성만을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상 혈소판이 15~45만개 정도라면 5만개까지는 수혈을 하지 않고 경과관찰을 하지만 2만개 이하로 떨어지면 수혈을 고려한다. 잦은 혈소판 수혈은 혈소판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수혈에 반응하지 않는 혈소판 감소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수치가 낮다고 무조건 수혈을 하기 보다는 전신상태를 고려하여 출혈의 증거가 관찰되지는지 판단하여 수혈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혈소판을 자주 하는 환자의 경우 수혈의 기준은 1만개 이하로 감소할 때로 낮춰서 시행하기도 한다. 백혈구나 적혈구는 수혈이 아니더라도 그 생성을 촉진하는 가공된 약제가 있지만, 혈소판은 최근까지 수혈이 아니면 방법이 없었다. 혈소판 생성촉진제는 최근 미국에서는 임상연구를 마치고 FDA에서 공인을 받았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질환에서 임상연구를 수행중인데,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 발생하는 혈소판 감소증에 적용되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항암치료 중에 발치를 하거나 응급 수술을 하는 등 출혈이 유발되는 시술이 예상되면 반드시 항암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필요하며, 출혈 유발 가능성을 높이는 아스피린계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다치기 쉬운 격렬한 운동을 피하는 것이 좋고 코를 풀 때도 부드러운 휴지로 힘을 세게 주지 않고 푸는 것이 좋겠다. 남성의 경우에는 상처가 쉽게 생길 수 있는 일반면도기보다 전기면도기를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점막염과 구내염, 설사와 변비, 오심과 구토

 

우리 몸의 부드러운 점막이 있는 모든 곳에서 항암제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항암제 투여 후 1주일이 지나면서부터 입안 점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구내염이, 위장 점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오심과 구토가, 대장 점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설사와 변비가 발생할 수 있다. 각각 장기에서 점막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 예를 들면 이물질로부터 장기를 보호하고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설하는 점막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손상되기 때문에 관련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 몸에서 가장 균이 많이 번식하는 곳이 입안, 손발, 그리고 항문인데, 입안과 항문이 헐면서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싸니 환자들의 삶의 질이 이만저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이 커피 맛을 못 느끼고, 평소에 좋아하는 걸 먹어도 자꾸 울렁거리기만 하고, 밖에서 친구라도 만날라치면 같이 차 마시는 것도 어렵고 이야기나누다가 화장실 가는 일도 힘들다. 우리가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면 밥 한번 같이 먹자가 인사인데, 항암치료 중인 환자들은 외부 식당에서 조미료가 잔쯕 들어간 음식을 사 먹는 일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으니 집으로 초대해서 깨끗한 흰밥과 양념안한 맑은 장국으로 밥 먹는게 아니면 누군가와 같이 식사하는 약속은 할 수없는 셈이다. 삶의 유지되는데 먹고 싸는 것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크던가!

그러나 이게 어디 감기 치료하는 과정도 아니고 결핵 치료도 6개월 이상 한다는데, 항암치료 받는 우리 환자들은 이 정도 불편함 정도는 굳건한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편함을 넘어서 증상이 심해지면 결국 이번에도 응급실로 입원하는 상황이 초래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약제에 대한 반응이 다르고 약을 흡수하고 대사하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약제로 치료하는데도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약인데도 부작용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이요 설사하는 사람, 변비 생기는 사람이 다른 것이다. 오심과 구토, 변비와 설사 등의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제를 잘 조절해서 복용하며 불편한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조절해서 약을 먹을 정도의 고수가 되는 것은 항암치료 하루이틀 받은 것으로는 절대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처음 항암치료를 하는 새내기 환자가 무리하게 고수 흉내를 내려고 하면 안된다. 교육도 무지 많이 받고, 치료 경력도 꽤 오래된 환자들, 약제 부작용으로 응급실에도 몇번 왔다갔다 하면서 고생한 고수 환자들은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를 비교적 정확히 잘 감지하고 나름대로 증상을 조절하며 약을 먹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다.

약제 부작용으로 2-3일 이상 일상적인 식사가 어렵고, 배설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감소하거나 증가하기를 몇일, 그럴 때는 병원에 오셔서 혈액검사를 해서 골수기능을 체크하고 전해질 이상이 있는 경우 이를 교정하며 탈수를 방지하기 위한 수액치료를 하는 것이 몸을 많이 상하지 않게 하는 지름길이다. 항암제로 인해 유발된 설사는 일반 수액치료만으로는 멈추지 않아 지사제를 먹고 48시간 안에 호전되도록 치료의 목표를 잡는데, 약을 먹는데도 호전되지 않으면 주사약을 써서라도 설사를 멈추게 해야 몸의 일반적인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조금 호들갑스럽게 보이더라도 항암치료를 처음 받는 환자들은 자기 몸의 이상상태를 잘 기록하고, 몸이 좀 힘들다 싶으면 병원에 와서 자신 몸의 변화추이를 담당 의사에게 보고하는 게 좋겠다. 의사가 보고 별 일아니니 걱정마라는 말을 듣고 그냥 빈속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치료 초반에는 자기 몸을 잘 관찰하고 더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는 것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의사입장에서 별일 아닌데 자꾸 병원에 와서 의사를 만나려고 하는 환자들이 반갑지는 않음을 고백한다. 왠만하면 씩씩하게 참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미련하게 참다가 나빠지는 환자가 생기면 절대 안될 노릇이다. (일부 환자들을 제외하고) 병원오기 좋아하는 환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왠만하지 않으니 불안하고 힘들어서 병원에 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난 힘들면 병원에 오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응급실에 와서 힘들더라도 그건 환자들이 견뎌야 할 몫이니 어쩔 수 없지만…)

 

골수기능이 저하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들, 점막세포처럼 몸에서 빨리 자라나는 세포들이 항암제의 공격을 받아 기능이 상실되면서 생기는 구내염, 설사, 소화 장애 등의 부작용들이 놀랍도록 항암제의 치료 주기에 따라 증상이 악화되고 호전되기를 반복한다.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은 그 주기를 알기 때문에 다음 항암치료기 시작되기 전날 밤이면 예기불안이나 예기구토 증상을 느끼게 된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구토를 시작하는 자신을 보며 정신력이 약한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고 말한 환자가 있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천하의 체력과 천하의 골수를 가지고 있어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항암치료가 거듭되다 보면 장사없다. 그 주기를 받아들이고, 가능하면 덜 힘들게, 가장 힘들 때 덜 고생하는 방법을 찾고 예방하며 슬기롭게 항암치료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치료 중에는 의지로 되는 일이 있고 의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