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SCI 0점

슬기엄마 2011. 2. 27. 11:51

 

아직도 나는 초심자의 마음인데

전문의가 되면 최소한 해리슨에 있는 표나 그림은 머리속에 새겨져 있을 줄 알았다. 비록 내가 동기들보다, 혹은 절대적으로 나이가 많기는 해도, 전문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정도의 실력이면, 최소한 내과 레지던트 4년을 나름열심히 보냈다고 한다면, 전문의가 되어 환자를 보는데 자신감도 붙고, 뭔가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생기고 할 줄 알았다. 전문의만 되면

그러나 현실을 역시 매정하다. 뭔가 불확실하게 알고 있던 절름발이 지식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선생님,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정확한 근거를 요구하는 후배 레지던트들 보기가 민망하다.  어느새 많이 멀어져 버린 내과 내 다른 분과의 세세한 지식들에 취약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주로 다루는 항암제의 기본적인 기전이나 종양학의 고전격인 교과서도 제대로 읽지 않아 기초 지식은 점점 얕아진다.

그래도 다행인건 늘 환자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 ‘환자 열심히 봐서 노벨상 받은 사람 없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고 환자를 열심히 보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가시적인 성과물로 남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복되는 회진 속에서 누구보다, 어떤 지식보다 나를 가르치는 스승은 환자라고 생각한다. 아직 fellow이니 더 배우고 익힐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뭣 좀 안다는 전문의가 아니라 아직도 배우고 경험할 것이 많은 초심자의 마음을 조금 더 유지해도 괜찮은 것 아니겠냐고 위로하고 싶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논문!!!???

그러나 정작 fellow가 된 나에게 요구되는 과제 중에 ‘SCI 등재 저널에 논문내기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된다. 비단 종양학 뿐만 아니라 왠만한 대학병원의 왠만한 과에서는 이제 SCI 합산 점수, 논문 편수 이런 양적인 data가 그 과의 실력 및 실적, 해당 개인의 실력 및 실적으로 대치되고 있고, 승진, 보너스 등의 인센티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대다수의 의사들은 겉으로 차마 드러내지는 않아도, 논문 압박의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나야 논문 몇 편이라도 써야, 그리고 가능하면 좋은 저널에 실린 논문이 있어야 취직할 때 유리하고 서류에 쓸 말도 있으며 그동안 놀지 않고 열심히 연구했다는 증거가 되어, 나에게 심각한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환자를 열심히 보았다는 것은 객관적 기준이 되기 어렵다.

의대에서 논문이라는 기준으로 교수임용 및 승진의 기준이 강화된 것은 불과 3년을 전후하여 생긴 새로운 트렌드이고, 그전까지는 알음알음으로, 핵심 멤버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 사람을 선발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 선발 관행에 비해 논문의 양과 질을 임용 및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훨씬 객관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학맥과 인맥이 인재등용의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패거리 문화를 공고히 하는 것 보다는, 다수에게, 누구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기준으로 논문업적을 제시하게 하여 공정하게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 나도 논문으로 승부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어떤 조직의 inner group이 될 만큼의 인맥도 없지만…)

 

환자보기와 논문쓰기는 제로섬 게임?

그런데 내 생활을 돌아보면 논문을 쓰거나 자료 및 아이디어를 정리할 시간이 너무나 없다. 내 능력의 탓도 있겠지만, 환자를 보면서 이상하거나 궁금한 것, 뭔가 환자를 위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때 폭넓게 논문 및 자료를 찾고 이론적으로 제안된 대답들이 과연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 우리 병원에서 시행해 볼 수는 있는지, 환자에게 경제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보고 확인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드문 질환의 진단 및 치료, 치료에 반응이 없는 환자에 대한 접근, 정확한 진단이 되지 않은 채 나빠져가는 환자에 대한 추가적인 진단 등의 난국에 봉착하면 마음이 활활 타오르면서 자료를 찾는다. 과연 이론적으로, 혹은 논문에서 제시한 자료들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이용가능한 자료일까? 자신없어 하면서

아침 회진을 바람처럼 돌고 지나가 버리면 의료진의 결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찬찬히 설명해 주어야 할 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데 그동안 병의 경과와 치료경력을 미쳐 꼼꼼하게 파악하지 못한 주치의의 어설픈 설명에 화를 내며 더 높은 의사의 설명을 듣겠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여기 저기 병동에 흩어져 있는 주치의들과 환자의 치료계획에 대해 상의하고, 때론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공부해야 할 때, 환자를 특별히 부탁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타과 의사들과 논의하고 부탁해야 할 때 (아마 근무 병원을 옮기고 나서 인맥이 다 끊어지고 관계망이 없는 상황에서 일을 도모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 같다), 협진보러 갔다가 환자와 보호자가 설명을 요구하며 붙잡을 때, 응급실에서 처음 본 보호자가 나를 위협하며 불만을 토로할 때, 나의 시간은 참으로 부질없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리고 만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또 하루를 버렸구나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이렇게 바쁜 임상 현장에서 많이 경험하고 많이 고민하고 많이 공부하는 것이 장차 내가 평생 살아가야 할 이 분야에서 기초를 튼튼히 닦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대충할 때나에게 시간이 허락된다.

 

무한 경쟁의 시대, 폭 넓은 보편적 지식보다 좁고 깊은 전문지식만이 생존전략?

환자보는 시간을 줄이면, 회진을 안 돌면, 설명을 안하면 비로소 시간이 생긴다. 자기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도 요령이고 실력이라고들 한다. 오후 회진을 안 돌거나 대충 일하면 나를 위한 뭔가를 조금씩 해낼 수 있다. 환자를 보며 허덕이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논문 좀 썼냐?”는 질문을 하길래 좀 바빠서…’라고 대답했다가 너 그렇게 논문 안쓸거면 나가서 환자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니, 나가서 환자나 봐!!!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레지던트 3, 4년차부터 병동에서 환자를 보는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 데이터를 입력하고 SPSS를 돌리며 논문을 쓰고 subspeciality를 정하기 전부터 외국 저널에 좋은 논문을 내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내가 호감을 갖는 모 주니어 선생님께 선생님, 그동안 논문 많이 쓰셨어요?’ 했더니 쓰레기 같은 논문 8개 써서 승진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며 시니컬하게 쓴 웃음을 보낸다. 어쩌면 진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쓰레기를 재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나는 사회학을 했던 가락이 있어서 논문을 찾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내보고 흉내도 내면서 논문쓰는 것이 그렇게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작 환자진료와 논문쓰기의 시간이 충돌할 때는 논문이나 자료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아직은 환자가 우선이다. 그리고 난 아직 SCI 빵점이다.

 

만약 내 실력이 여기까지고 더 이상 환자보기와 논문쓰기의 양팔 저울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고 해매게 된다면, 난 아쉬울 것 없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있는 개인이 되지 못한 채 낙오하겠지… ‘환자만보다보면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보다 어려운 케이스에 도전하고 다년간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자료를 정리하면서 논문을 쓰는 학문적 유희를 그리워할 것이다. 제로썸 게임이 되지 않게 하는 요령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