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너무 몰두하지 맙시다

슬기엄마 2012. 4. 23. 23:52

몰두하는 삶

그러나

 

외래 오는 날이 비슷한 환자들끼리 친해집니다.

유방암 클리닉에 와서 저를 처음 만나시는 분들은 대부분 항암치료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병원이 너무 두렵고

항암제도 너무 무섭고

의사도 간호사도 너무 낯설어서

입을 꼭 다물고 마음의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긴장된 마음으로 외래에 오시지만

시간이 흐르고

큰 일없이 치료가 진행되면서

같은 날 외래를 보는 환자들끼리 진료를 기다리면서 말문을 틉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병기도 알게 되고 서로의 치료 진행 상황도 알게 되면서

서로의 병에 대해, 서로의 형편에 공감하게 되면서 친해집니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공유합니다.

누가 치료 중 갑작스럽게 입원이라도 하게 될라치면

외래에 왔다가 입원한 동료를 찾아 위로방문도 하고 기도도 해주고

그렇게 치료 동맹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때론 의사보다 치료 동기가 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걱정도 많아집니다.

제가 외래를 보다 보면

순서대로 몇 명이 저에게 우르르 비슷한 질문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마음 속으로 , 오늘 진료 대기 중에 무슨 얘기들을 하고 계셨구나알게 됩니다.

저도

때론 자세히, 자상하게 설명하기도 하고

때론 쓸데없는 고민 그만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중에 많은 것은

실재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 95%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성의 힘을 빌어, 감성의 압도적인 힘에 굴복하여 매일 걱정을 하고 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물론 그런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지내면, 가능한 해결책이 있는데도, 지레짐작으로 과도한 공포에 사로잡히고 쉽게 절망해버리기 쉽습니다.

 

치료를 시작하시는 분들

치료를 유지하고 계시는 분들

때론 병이 나빠져서 절망하시는 분들

우리 환자분들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쉽게 그런 여러분을 말한마디로 위로하거나 아무 일 없을거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걱정과 불안한 마음, 그 마음 모두 우리가 끌어안고 가야 하는 운명의 짐입니다.

불안하지만 지금을 잘 살아야 하는게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 열심히 현실을 사는 것, 후회없는 삶을 사는 것은

꼭 미리 걱정을 많이 한다고, 미리 대비를 많이 한다고 성취할 수 있는 과제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때로는 그런 걱정을 놓아버리는 것, 근거는 없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지금의 현실에 집중하고 문제에 몰두하는 것으로만 집중하지 마시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사소한 웃음과 즐거움을 즐길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제는 저희 종양내과 치프 레지던트 선생님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첫영성체를 모시는 그 녀석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 한방울이 뚝.

 

나의 외로움을

나의 걱정을

나의 메마른 영혼을

하느님이 채워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병이 나빠졌다는 소식을 전할 때

그런 환자를 한명 한명 만날 때마다 제 마음도, 제 영혼도 숨죽여 눈물 흘립니다.

그래서 저도 많이 지쳤나 봅니다. 암환자를 진료하기에 제가 너무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너무 몰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부족함에 눈물흘리고 힘들어하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본질이니까.

그런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고 너무 걱정하지 않고

그냥 살려고 합니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