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늙어서 몸 아픈것도 힘든데 돈 없는 것은 더 서럽고

슬기엄마 2011. 2. 27. 11:36

늙어서 몸 아픈 것도 힘든데

돈 없는 것은 더 서럽고

 

진행성 위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받으신 66세 할아버지. 첫번째 항암치료 이후 1년 이상 병이 진행하지 않고 유지하셨으니, 평균 여명은 넘기셨다. 속이 불편한 증상이 조금씩 악화되고 복부 CT에서도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위벽이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는게 보였지만 할아버지가 항암치료를 원치 않으시고 입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셔서 외래에서 경과관찰 하고 있었다. 식사량이 줄고 몸무게도 너무 많이 빠져서 항암치료를 다시 하시면 어떨까 여쭤보니 할아버지는 검사 많이 안하고 입원 안하면서 항암치료를 하면 하시겠다고 한다. 매주 외래 주사실에서 항암제를 맞고 가실 수 있는 방법으로 치료를 시작하였고 할아버지의 전신상태는 ECOG PS 1. 병에 비해 매우 양호한 체력과 컨디션을 유지하시고 있었다. 66세라고는 하지만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약간 어색할 정도로.

그렇지만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어느날 할아버지는 음식물 넘기는 걸 점점 더 힘들어 하시더니 물만 넘어가도 토하는 증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항암치료 효과를 기대해 보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니, 암으로 막힌 부위에 스텐트를 넣어보는게 어떨까? 토하면서 흡입성 폐렴까지 오는 것 같아 항생제를 쓰기는 했지만, 막힌 부위를 뚫지 않으면 뭘 해도 컨디션이 크게 호전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스텐트를 넣기로 했다. 항암치료 중이라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중인데 괜찮을까 망설여졌지만 넣는게 더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스텐트를 넣으면 보통 다음 날 물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스텐트가 펴지면서 음식물 섭취를 단계별로 올리고, 죽 정도를 무리없이 드실 수 있으면 퇴원할 수 있으니까 일주일이면 퇴원하실 수 있겠지? 입원을 싫어하는 할아버지의 뜻을 맞춰드리고 싶었다.

 

중간진료비 영수증에 놀란 할머니

 

스텐트를 넣고 온 다음 날 열이 났다. ‘내시경을 하면 일시적으로 균혈증(bacterimia)이 있을 수 있으므로 열 나는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항생제도 쓰고 있었으니 경과보자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피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급강하하고 가슴 엑스레이에서 왼쪽 상엽으로 폐렴이 대문짝만하게 생겼다. 24시간이 지나자 혈액배양검사 세쌍에서 그람음성균이, 소변에서도, 가래에서도 같은 균이 자라고 있었다. 환자는 숨도 차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혈압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패혈성 쇼크(septic shock), 항생제를 바꾸고 모니터로 24시간 환자 생체징후를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고 inotropics를 시작하고 소변줄을 끼워 input and output을 정확하게 체크해야 했다. 중환자실이라도 가면 좋겠는데 자리도 없거니와 할머니가 단호하게 거부하신다. 절대 중환자실은 가지 않겠다고.

치료 시작 전 환자의 상태가 나쁘지 않았고, 이제 항암치료를 시작했으니 아직 항암제의 효과를 기대해 볼만한 때이고 항암치료 중 수치가 낮을 때 생긴 이벤트이니 수치가 오르면 좋아질 수 있고, 어쨌든 내시경 후 생긴 이벤트이니 병원에서 프로시저를 받고 나서 환자가 나빠지면 안되니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환자를 좋아지게 해야만 했다. 아침 저녁으로 피검사를 하고 매일 엑스레이를 하고 회진도 더 자주 가 봐야했다. EMR을 열면 이환자 혈액검사 결과부터, vital chart부터, fever 부터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환자는 백혈구가 회복되면서 전신 상태가 조금씩 양호해지고 혈압도 유지되기 시작한다. inotropics를 줄였다. 소변줄도 제거하고 6 liter까지 올렸던 산소 요구량도 줄어 오늘은 1 liter까지 산소량을 낮추어도 포화도가 95%가 나오니 모니터도 제거했다. 환자에 찔러 넣었던 수많은 관들, 줄들을 조금씩 제거하면서 , 좋아지겠구나마음을 조금은 놔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환자가 좋아지면서 내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지려고 하는데, 병실을 나오는 나를 복도에서 할머니가 붙잡는다. 퇴원하시겠단다. 아니, 지금 왠 퇴원? 이제 겨우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퇴원을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할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여 할아버지가 더 이상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고, 어차피 죽을 건데 병원에 있으면 뭐 하겠냐며 집에 가시고 싶다고 하신다. 

4기 암환자라도 돌이킬 수 있는 (reversible) 부분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치료하면 환자는 좋아진다. 궁극적인 완치를 물으신다면 나는 쉽사리 예스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니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릴 수는 있다. 나는 이 할아버지가 걸어서 퇴원하시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자꾸 지금 집에 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되려 내가 사정한다. 조금만 더 있어보자고. 이제 겨우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왜 그러시냐고. 지금까지 간호도 잘 하셨고, 할아버지도 잘 견디셨으니까 조금만 더 참으시라고. 그런데 정작 할머니의 눈물은 할아버지에 대한 염려도 분명히 있으셨겠지만, 어제 병원에서 나온 중간진료비 영수증 때문이었다. 자식 한명은 미국가서 오지도 못하고, 또 다른 자식은 자기 벌어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두 노인이 겨우 입에 풀칠해서 먹고 사는데, 버는 사람은 없는데 이번에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어차피 완치도 안된다면 무리해서 없는 돈에 치료하지 않겠다는게 할머니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할머니에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사람이 살고 봐야지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검사를 최소화하고 더 이상 비용지출이 안되는 방향으로 입원치료를 유지하겠다고 할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몇일만 더 여유를 달라고 했다. 사회사업과에 전화를 해 보지만, 경제력이 있는 자식이 있고 자기 소유의 집이 있으면 지원이 어려울 거라는 대답이다. 그래, 우리 병원이 자선단체도 아닌데 돈 없다고 누구나 지원해줄 수는 없겠지 하면서도,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지 못해 마음이 찜찜하다. 할아버지가 쇼크에 빠졌을 때 바꾼 항생제는 하루 4번 들어가고 있는데 보험이 되도 비싼 약인데 이거부터 바꿔야 하나?

 

혼자 발톱 깎기도 어려운 나이가 되었을 때

 

노인문제를 다룬 한 외국 서적을 보니 75~79세 노인이 경험하는 보행장애의 가장 흔한 원인이발톱을 제때 깎지 못해 생긴 문제때문이라고 한다. 이들 연령대의 35%가 자기 발톱을 스스로 깎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연령의 나이에서는 20% 이상에서 남의 도움없이 자기 몸을 씻을 수도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일컫고 있는데, 65세인지에 대해서 기원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함께 노동력의 원할한 공급을 위해서는 적정 기간이 되면 새로운 젊은 노동인구를 유입하고 나이가 든 사람은 은퇴를 시켜야 했던, 그리고 그들에게 노인연금을 주어야 했던 서구의 맥락에서 규정된 나이가 아닐까 싶다. 이제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뿐만 아니라 75세 이상의 노인도 급증하여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에서 14%가 되기까지 최단기 시간을 기록한 나라가 되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격변기를 살았고 발전 담론을 형성한 주체들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의 생산성을 약화시키는, 그래서 대접받지 못하고 자식들의 짐이 되고 있다는 비참한 심정으로 노년기를 접으려 하고 있다. 내일은 자녀분들을 병원에 오시라고 해서 면담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