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평생 공부를 한다는 것은

슬기엄마 2011. 2. 27. 11:35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나는 오늘 우연히 모 교수님이 당신 혼자 공부하시며 정리해둔 파일을 하나 입수했다. 당신이 공부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림, 사진, 메모들을 파워포인트에 정리해두셨다. 파워포인트 파일제목도 시원찮고, 편집도 안한 막파일이라 흰색 바탕에 통일된 글자체 한가지, 그리고 PDF file에서 복사한 그림들, 뭔가 연결된 흐름으로 메모와 사진과 그림이 이어지고 있는 듯 하지만 나로서는 그 흐름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선생님은 파워포인트 한장 한장마다 아랫쪽에 출처를 명시하셨다. 저널이름, 발행연도, 페이지까지 소상이 기록해 놓으셔서 난 전자도서관에 들어가 저널 뒤지기를 시작했다. 아쉽게도 저자이름을 기록해놓지 않아 저널을 찾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마치 남들의 눈을 피해 도둑질하는 사람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저널을 찾아 컴퓨터에 저장하고 프린트로 출력하였다. ‘이것만 읽으면 최소한 선생님만큼 알게되는 건가!’ 하는 행복한 망상에 빠진 채, 또 한번 이 주제를 타겟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의욕과 행복감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의욕과 행복감을 가지고 밤을 불태운 게 과연 언제이던가 싶다.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한 청춘의 독서는 잠시 정치권에서 행보를 멈춘 유시민이 대학에 입한한지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자신이 처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며 30년간 자신 사상의 궤적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그는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고전들에 대해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고 있는데, 멜서스의 인구론에 이런 내용이! 공자의 논어가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니! 나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리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는 것에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싶지만, 당장 해야할 다른 일들이 내 발목을 잡지만, 그가 통렬한 감동을 느꼈다는 그 책,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의욕이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을 할까 말까 자꾸 유혹이 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다음 두가지 중 최소한 한가지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공부 그 내용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앎으로써 기쁘고 개벽천지를 만난 것 같은 감동 그 자체가 좋아서.

둘째 지적허영심이다. 난 남들이 모르는 분야를 이만큼 더 알아서 좋다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유방암 뼈전이에서 무슨 약을 쓰느게 좋니?’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밋밋하게 , 조메타 쓰면 되이렇게 간단히 폼없이 말하는 것 보다는 ‘*** ***년에 대규모 3상 스터디를 했는데 pamidronate하고 zolendronic acid하고 비교했더니 compression fracture 발생율에서 ***의 차이가 나고 bone turnover marker에서 ***의 차이를 보여서 zolendronic acid를 쓰는 것이 *** risk reduction effect가 있다고 볼수 있지라며 화려하게 대답하는 것을 즐기는 것.

내가 감히 진단하기로 많은 사람들은 전자보다는 후자적 요인에서 강한 drive를 갖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후자의 측면에서 공부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겠다던 대학시절의 결심을 내려놓을 때,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하겠다고 사회학과 대학원을 처음 결심했을 때, 내가 하려고 했던 공부는 단지 지적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공부는 아니었다.

나는 세상에 유의미한, 가치있는 존재로 살다가 죽기를 원하였고, 내가 살았기 때문에 가치있는 삶과 시간과 공간은 무엇으로 창출되는지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청춘이었다. 나의 청춘은 갔는가? 지금은 시들시들하다. 물을 줘야겠다. 물을 줘서 다시 싱싱해지면 고목에서도 꽃이 피듯, 나의 메마른 영혼이 회복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오늘도 물을 줘야겠다. 아직 나의 청춘은 다 지나간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