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슈퍼맨 할머니 파이팅!

슬기엄마 2011. 2. 27. 11:28

슈퍼맨 할머니 파이팅!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4기 암환자이다. 4기 암환자라는 진단을 받으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치료받고 암환자로 살아가기까지 환자들은 눈물겨운 투쟁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슈퍼맨으로 거듭나는 분들이 있다.

75세가 넘은 할머니,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고 수술받은 것이 1992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다. 첫 수술 후 7년째 되던 해에 유방암이 있던 쪽 흉곽에서 병이 재발하여 재수술을 하고 첫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로부터 5년 후 이번에는 흉골뼈와 주위 림프절로 전이된 병이 발견되었고 환자는 국소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였고 추가적인 항암제를 쓰지 않고도 호르몬제만 유지하면서 병이 잘 조절되는 듯 하다가 3년이 지난 2007년에는 드디어 폐까지 전이되어 전신적으로 암이 퍼지기에 이르렀고 본격적인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자꾸 재발하는 병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뭐가 뭐가 좋다더라, 어디가서 기도를 받으면 효험이 있다더라, 어디 가서 한약 지어먹으면 좋아진다더라주위 사람들의 온갖 관심과 참견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우리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표준치료를 받겠다는 입장이 확실하셨다. 자존심도 강하고 어찌나 꼬장꼬장하신지, 의사가 뭘 지시하는지, 지시대로 간호사가 잘 수행하는지 이래저래 참견이 많으셔서 사실 귀찮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잔소리가 많아도 교수님이 오시면 아주 다소곳하게 선생님 지시를 따르셨다. 길고 긴 항암치료의 시절 그저 교수님의 지시대로, 특히 최근 2년간은 약효가 잘 듣지도 않아, 어떨 때는 약을 쓴지 두달만에 재발이 되어도 원망없이 다른 약으로 잘 치료해주시겠죠라며 기다리셨다.

얼마전 환자는 심한 폐렴으로 응급실로 왔다. 공기가 잘 통하는 폐는 엑스레이에서 까맣게 보이는데, 할머니의 폐는 온통 허옇게 변해있었다. 급성호흡부전으로 인공삽관 및 중환자실 치료를 시작하였다. 말기암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때 중환자실 치료까지 하는 것이 무의미한 생명연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환자의 암이 어떤 종류이냐, 최근 치료에 반응이 있었는가, 이번 일이 있기 직전 환자의 전신상태가 좋았는가 등 여러가지 요인을 고려해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유방암은 재발이 반복되어도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이고, 갑작스럽게 폐렴이 발생하면서 호흡부전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빠른 속도로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믿고 중환자실 치료를 하기로 하였다.

할머니는 단 10일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나오셨고 3일째인 오늘 휠체어를 타고 병동을 돌아다니고 계신다. 용감하고 씩씩한 할머니, 병을 받아들이되 몸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서 치료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 당신 생일이라며 나에게 주신 책상 속의 초콜릿을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외친다. ‘슈퍼맨 할머니, 파이팅! 더 좋은 약이 나올 때까지 잘 버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