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소개하며

슬기엄마 2011. 2. 27. 11:14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

 

고등학교 졸업-의과대학 입학-인턴-레지던트가 되기까지의 정규코스에서 단 한차례도 미끄러짐없이 의사가 되기 위해 달려온 그녀가 힘든 레지던트 1년차를 거의 마쳐갈 무렵, 유방암을 진단받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녀를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대화체는 아니지만, 이 책의 구성은 환자인 그녀와 의사인 내가 병에 대해 상의하고 견디며 나눈 대화를 정리한 셈이다. 조직검사를 한 후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지만 3기로 진단받고 망연자실해 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유방암의 특징, 치료 과정과 스케줄을 설명해야 하는 나. 수술 전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그녀의 마음 속에 회오리치고 있을 수많은 고민과 갈등, 그러나 짐짓 모른 척 항암제의 부작용과 독성을 설명하고 잘 견디라고 말하는 나. 이렇듯 지난 1년간 우리가 함께 병을 경험하고 치료과정을 논의했던 기록들을 가감없이 논픽션으로 기술하였다.

나는 이제 막 진단을 받은 그녀에게 처음부터 우리 치료과정을 잘 이겨내자. 일기처럼 지금의 치료과정을 잘 기록해서 너보다 더 나중에 유방암 치료를 받게 될 많은 환자들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는 그런 책을 쓰자라고 말했다. 그때는 정말 책을 쓰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암 진단으로 갑자기 인생의 시간표가 바뀐 그녀에게 병이 아닌 다른 뭔가로 관심을 돌려주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만 생각하지 말고 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뭔가 미션을 그녀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션을 훌륭히 수행하였고 방사선 치료를 마친 작년 겨울부터 우리는 과연 책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대화하였다. 그녀가 환자로서 경험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그에 대해 의사인 내가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로 답을 하고, 겉으로는 그녀에게 해준 이야기들과 달리 내 마음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덧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환자의 시각과 의사의 시각이 교차되는 14가지 주제가 책을 구성하고 있다.

 

나를 위해

 

학부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다소 먼길을 돌아 지금의 의사생활을 하고 있는 나.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는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사회과학적 마인드로 환자와 의사, 병원, 의료시스템을 거시적으로 분석하고, 복잡해 보이는 현실을 멋지게 해석하여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은 소망이 남아있나 보다. 의료사회학을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의 나는 환자의 시각에서 질병과 의료, 의사와 병원, 의료시스템을 바라보았다면, 지금의 나는 이제 완연한 의사의 시각으로 현실을 달리 보게 되었다. 환자와 의사의 시각은 각기 다르다. 이러한 차이가 일반 국민과 의료인, 환자와 의사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간극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병에 대해, 치료에 대해 이해하기 보다 오해하기가 훨씬 쉽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유방암이라는 한 질환이 환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경험되는지, 나조차도 많이 잊게 된 환자의 시각에서 병을 서술하고 싶었다. 설령 그 사람이 의사라 하더라도 병을 진단받고 나면 역시 환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내 후배가 쓴 유방암 체험기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더불어 의사들에게도 환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환자들도 의사들의 고민과 갈등, 진료의 원칙과 의사로서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심히 환자를 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저 의사의 머리 속에 환자의 치료방침을 두고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가로막는 현실의 장벽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하여 내가 의료사회학을 공부하며 의문을 품었던 고전적인 주제들, 병과 환자, 의료를 다소 외부자적 시각으로, 혹은 좀더 거시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훈련을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또한 병만 치료하는게 아니라 환자를 치료해 한다는 종합적 시각을 강조하셨던 선배 의사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나의 이러한 고민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지는 자신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으로 인한 아픔과 갈등, 상처들을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투병한 그녀, 위험 요인이 많아 마음 속으로는 항시 재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씩씩하고 희망차게 치료받는 모습을 공개한 그녀,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 많은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감히 책 소개를 해보기로 했다. 한번 읽어보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