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연세의료원 노조 파업의 현장에서

슬기엄마 2011. 3. 1. 18:20

 

연세의료원 노조 파업의 현장에서

 

우리 병원 노조의 파업이 벌써 일주일을 넘겼다. 어제는 요로감염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를 외부 병원으로 전원하였다. 7년 전 우리 병원에서 루프스를 진단받고 3년 전에는 CNS까지 involve되어 힘겹게 회복한 병력이 있는 환자다.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보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외래에서 추적관찰 중인 이 환자를 위해 길고도 구질구질하게 소견서를 작성하였다. 이 사람의 disease activity를 시사하는 symptome and sign은 무엇이었는지, disease activity가 증가하면 어떤 치료를 해서 효과가 있었는지, 최근 스테로이드 용량은 어떻게 조절하고 있었는지, 마지막 균 배양 검사에서 어떤 균주가 자랐으며 어떤 항생제에 민감성이 높았는지…. 세세한 검사결과들까지 챙기다 보니 시간도 엄청 오래 걸렸다.

오버같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왠지 다른 병원에 가면 찬밥 신세가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환이라며 다른 의사들이 꺼려하면 어쩌나, 사소한 정보라도 빠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내 아이 다른 집에 가서 구박받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심정과도 비슷했다. 우리가 잘 봐줘야 하고, 잘 봐줄 수 있는 환자인데, 생면부지 병원으로 보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환자에게 정말 미안하였다.


2
주 정도 신환 입원이 없다. Stage lV의 종양학과 암환자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지 기약도 없이 애타는 마음으로 병원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말기 암환자이지만, 살아야 할 의미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볼 요량으로 치료를 결심한 분들이다. 그렇게 시작한 항암치료에 다행히 반응이 있다며 좋아할 무렵, 갑자기 치료가 중단되어 버린 이들의 초조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순간에도 몸 안에서 암세포가 점점 퍼져가는 느낌이 든다는 한 환자의 탄식을 들으며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이번 주말을 넘기기 전에 이들을 입원시킬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입원장을 받고도 입원하지 못한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연락하는 일부터, 미리 기본 검사를 해올 것을 요청하고, 인력을 재배치하여 항암제 조제, 수액 연결 등 원래 의사의 업무가 아닌 것들이라도 전공의들이 직접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할 텐데….


진단검사의학과나 진단방사선과 전공의는 서비스 파트 인력이 파업으로 빠져버린 후 검사실 기사로 나섰다. 접수, 수납, 안내를 비롯하여 X-ray, CT, MRI도 직접 찍고 판독한다. 밤새 병동으로 이동촬영도 다닌다. 진검 전공의는 채혈도 하고 기기회사로 연락하여 maintainance를 직접 배워 기계를 가동하고 점검한다. 마취과가 채혈을 도와주지 않으면 진검 전공의는 기본 lab을 시행하고 output report할 수 없다. 수많은 검사가 이들의 손에서 밤을 새워 진행되고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임상 분야 전공의들은 갑자기 줄어버린 환자 수에 상대적으로 할 일이 없다. 불안한 마음에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나와 늦게까지 일을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당직도 서지만, 정작 몸이 그리 바쁘지는 않다. CPR 방송이 나니 순식간에 내과 의사 30명이 모였다. 파업으로 분위기 안 좋은 병동에서는 간호사가 vital sign, I&O, 채혈을 해주지 않고 call도 해주지 않는다. 의사는 order내고 그 order대로 직접 다 시행해야 한다는 벽보가 붙어 있다. 전공의, 전임의, 인턴, 학생이 돌아가면서 sugar check도 하고 vital sign도 확인하며 charting도 한다. 그 자리에서 lab도 뽑고 station에 가서 c-line set도 가지고 와서 내가 setting하고 내가 line을 넣는 일도 있다. 파업이 시작된 지 10일이 넘었는데 전공의 업무배치가 아직은 편중되어 있는 것 같다.

다른 병원으로 전원이 어려운 혈액내과 환자들의 병동은 노조가입 여부를 막론하고 전 간호사가 정식 근무를 하고 있다. 파업이 결정되기 며칠 전부터 수간호사가 간호사 개개인을 다 면담하고 손 한번 바뀌면 유리처럼 깨질 수 있는 혈액내과 환자들에 대한 간호는 파업과 무관하게 제공되어야 함을 설득하였다. 파업이 시작되던 날, 정규복을 입고 모두가 station에서 일하며 인계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대로라는 말이 이때처럼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파업이 시작되었으면 노사 양측은 파업 1주일, 2주일, 1달 등을 단위로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기전으로 파업을 정리할 것인지, 장기전으로 가게 될 것인지에 따라 전략과 전술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노조도, 경영진도 아니기 때문에 양 집단의 내심은 알 수 없지만, 환자 진료를 위한 의료진의 계획이 더 이상 늦추어져서는 안 될 것 같다.

나는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깨닫고 정치적 수단으로서 파업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이다. 그러나 파업은 고도로 정치적인 공간이다. 현재 노조가 외부적으로 내걸고 있는 의료의 공공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유니언숍 허용의 문제는 명분과 정당성을 위해 존재하는 이념/이데올로기이며, 내부적으로는 한국노총의 동의 하에 3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노동관련법이 예고되면서 노조 및 노조 지도자들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운동 자체도 개혁의 대상이 되는 마당에 노조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세력화를 도모하거나 경제적으로 물적 토대를 공고히 하지 않으면 존재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한편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의 인사권 요구에 대해 강한 불안감을 느끼고 유니언숍으로 표방되는 노조의 형태 변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최대한 막고 정치적인 요구에 대해서는개별 병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논조로 논의 전개를 유예하고 있다. 경영진의 방어와 노조의 공격 지점이 정면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의 파업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인가? 나는 수술을 기다리는, 항암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단지 자동차 생산 대수를 감소시키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생명이 담보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직종의 파업과 다른 차원의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노조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서 총파업을 결의하고 검은 리본을 달며 파업의 결의를 다지던 날, 우리 병원의 노조는 정치적 이슈와 무관하게, 상급단체의 결의와는 무관하게 야유회를 갔었고,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치열했을 때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 파업을 감행했던 경험이 있다. 과거가 모든 현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책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의사가 된 내가 지금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명제는 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의 권리이다. 외형적인 파업의 유지 여부와 관계없이, 하루라도 빨리 우리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그게병원밥먹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우리 병원 노조의 파업이 벌써 일주일을 넘겼다. 어제는 요로감염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를 외부 병원으로 전원하였다. 7년 전 우리 병원에서 루프스를 진단받고 3년 전에는 CNS까지 involve되어 힘겹게 회복한 병력이 있는 환자다.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보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외래에서 추적관찰 중인 이 환자를 위해 길고도 구질구질하게 소견서를 작성하였다. 이 사람의 disease activity를 시사하는 symptome and sign은 무엇이었는지, disease activity가 증가하면 어떤 치료를 해서 효과가 있었는지, 최근 스테로이드 용량은 어떻게 조절하고 있었는지, 마지막 균 배양 검사에서 어떤 균주가 자랐으며 어떤 항생제에 민감성이 높았는지…. 세세한 검사결과들까지 챙기다 보니 시간도 엄청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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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같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왠지 다른 병원에 가면 찬밥 신세가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환이라며 다른 의사들이 꺼려하면 어쩌나, 사소한 정보라도 빠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내 아이 다른 집에 가서 구박받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심정과도 비슷했다. 우리가 잘 봐줘야 하고, 잘 봐줄 수 있는 환자인데, 생면부지 병원으로 보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환자에게 정말 미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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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정도 신환 입원이 없다. Stage lV의 종양학과 암환자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지 기약도 없이 애타는 마음으로 병원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말기 암환자이지만, 살아야 할 의미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볼 요량으로 치료를 결심한 분들이다. 그렇게 시작한 항암치료에 다행히 반응이 있다며 좋아할 무렵, 갑자기 치료가 중단되어 버린 이들의 초조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순간에도 몸 안에서 암세포가 점점 퍼져가는 느낌이 든다는 한 환자의 탄식을 들으며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이번 주말을 넘기기 전에 이들을 입원시킬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입원장을 받고도 입원하지 못한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연락하는 일부터, 미리 기본 검사를 해올 것을 요청하고, 인력을 재배치하여 항암제 조제, 수액 연결 등 원래 의사의 업무가 아닌 것들이라도 전공의들이 직접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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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검사의학과나 진단방사선과 전공의는 서비스 파트 인력이 파업으로 빠져버린 후 검사실 기사로 나섰다. 접수, 수납, 안내를 비롯하여 X-ray, CT, MRI도 직접 찍고 판독한다. 밤새 병동으로 이동촬영도 다닌다. 진검 전공의는 채혈도 하고 기기회사로 연락하여 maintainance를 직접 배워 기계를 가동하고 점검한다. 마취과가 채혈을 도와주지 않으면 진검 전공의는 기본 lab을 시행하고 output report할 수 없다. 수많은 검사가 이들의 손에서 밤을 새워 진행되고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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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임상 분야 전공의들은 갑자기 줄어버린 환자 수에 상대적으로 할 일이 없다. 불안한 마음에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나와 늦게까지 일을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당직도 서지만, 정작 몸이 그리 바쁘지는 않다. CPR 방송이 나니 순식간에 내과 의사 30명이 모였다. 파업으로 분위기 안 좋은 병동에서는 간호사가 vital sign, I&O, 채혈을 해주지 않고 call도 해주지 않는다. 의사는 order내고 그 order대로 직접 다 시행해야 한다는 벽보가 붙어 있다. 전공의, 전임의, 인턴, 학생이 돌아가면서 sugar check도 하고 vital sign도 확인하며 charting도 한다. 그 자리에서 lab도 뽑고 station에 가서 c-line set도 가지고 와서 내가 setting하고 내가 line을 넣는 일도 있다. 파업이 시작된 지 10일이 넘었는데 전공의 업무배치가 아직은 편중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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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병원으로 전원이 어려운 혈액내과 환자들의 병동은 노조가입 여부를 막론하고 전 간호사가 정식 근무를 하고 있다. 파업이 결정되기 며칠 전부터 수간호사가 간호사 개개인을 다 면담하고 손 한번 바뀌면 유리처럼 깨질 수 있는 혈액내과 환자들에 대한 간호는 파업과 무관하게 제공되어야 함을 설득하였다. 파업이 시작되던 날, 정규복을 입고 모두가 station에서 일하며 인계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대로라는 말이 이때처럼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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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시작되었으면 노사 양측은 파업 1주일, 2주일, 1달 등을 단위로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기전으로 파업을 정리할 것인지, 장기전으로 가게 될 것인지에 따라 전략과 전술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노조도, 경영진도 아니기 때문에 양 집단의 내심은 알 수 없지만, 환자 진료를 위한 의료진의 계획이 더 이상 늦추어져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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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깨닫고 정치적 수단으로서 파업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이다. 그러나 파업은 고도로 정치적인 공간이다. 현재 노조가 외부적으로 내걸고 있는 의료의 공공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유니언숍 허용의 문제는 명분과 정당성을 위해 존재하는 이념/이데올로기이며, 내부적으로는 한국노총의 동의 하에 3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노동관련법이 예고되면서 노조 및 노조 지도자들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운동 자체도 개혁의 대상이 되는 마당에 노조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세력화를 도모하거나 경제적으로 물적 토대를 공고히 하지 않으면 존재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처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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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의 인사권 요구에 대해 강한 불안감을 느끼고 유니언숍으로 표방되는 노조의 형태 변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최대한 막고 정치적인 요구에 대해서는개별 병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논조로 논의 전개를 유예하고 있다. 경영진의 방어와 노조의 공격 지점이 정면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의 파업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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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인가? 나는 수술을 기다리는, 항암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단지 자동차 생산 대수를 감소시키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생명이 담보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직종의 파업과 다른 차원의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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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서 총파업을 결의하고 검은 리본을 달며 파업의 결의를 다지던 날, 우리 병원의 노조는 정치적 이슈와 무관하게, 상급단체의 결의와는 무관하게 야유회를 갔었고,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치열했을 때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 파업을 감행했던 경험이 있다. 과거가 모든 현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책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의사가 된 내가 지금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명제는 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의 권리이다. 외형적인 파업의 유지 여부와 관계없이, 하루라도 빨리 우리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그게병원밥먹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