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누구에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

슬기엄마 2011. 2. 27. 22:33

누구에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

 

당직을 서는 밤, 중환이 2∼3명만 되어도 다른 환자에게는 손 딱 끊고 중환 manage로만 온 밤을 지새게 된다. 중환들은 lab도 좋지 않고 한눈에 보아도 안색이 좋지 않아 주치의는 매우 불안하다. Lab도 자주하고 한 번이라도 더 가서 안색을 살핀다.

틈만 나면 OCS를 열어 lab을 확인하고 지금 들어가는 약들을 점검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그러나 그렇게 온 밤을 환자 곁에서 보내고 난 다음날, 환자들이 expire하는 경우도 많다. 의사를 그렇게 옆에 붙잡아 둘 정도로 중한 환자였으니 사망 가능성도 높았겠지만, 내가 낸 lab 하나, 내가 쓴 약 하나가 그의 죽음을 induction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게 밤잠 못 자고 환자를 보다가 다음날 환자가 죽게 되면 몸과 마음이 다 지치고 힘이 빠진다
.

Hepatocellular carcinoma terminal stage
의 환자와 acute B-viral hepatitis 환자가 있었다. HCC 환자는 hepatorenal syndrome을 의심하고 있는 중으로, daily Cr, T.bil은 오르고 urine output 감소하나 ascites는 증가하며 BP도 겨우 유지되는 정도로 낮다. 낮에 이미 조만간 환자가 죽을 수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보호자는 CPR은 원하지 않지만 그전까지 필요한 치료나 검사 등은 모두 진행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 환자의 악화되는 lab을 보며 다음 lab을 기다릴 때까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였다
.

그렇게 그에게 집중적으로 신경을 쓰는 동안, acute B-viral hepatitis 환자에게는 거의 가 보지 못했다. 다른 병력 없이 급성 B형 간염에 걸린 것으로 생각되는 그 환자는 저절로 간기능이 회복되며 수치도 정상화되어 곧 퇴원 예정이었다. 이 환자에게는 특별히 신경 쓰지도 못한 채 퇴원 예정일이 다가왔다. 간염에 대한 education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는 퇴원하자마자 직장에 복귀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교수님은 이번에 처음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라면 이후 퇴원했을 때 lab 추이는 어떨 것이며, 왜 자주 f/u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나를 꾸짖으셨다. 그 말씀, 당연히 맞는 말씀이긴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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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가 밤에 만나는 중환들, 특히 암 말기 환자들은 최선을 다한 manage에도 불구하고 expire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routine대로 procedure를 시행하고 protocol대로 환자를 보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히려 benign disease이고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education이 중요한 환자들에게는 정작 필요한 설명이 제공되지 못하고, 그 결과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퇴원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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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예상되고 의사로서 병원에서 해줄 것이 특별히 없는 환자에게는 유달리 쌀쌀맞은 한 선생님이 계신다. 그 선생님은 맺고 끊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해줄 것이 많은 환자들에게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시다. 죽을 사람도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살 사람에 대한 설명과 교육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더욱 필요한 일이다. 불치병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신약을 계획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완치를 바라는 대학병원에서 죽음이 뻔히 예상되는 환자에게 너무 많은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어차피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나는 우선 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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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는 순간이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참으로 야비한 결정들이 진행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한다고 할 때의최선에 대한 의사와 환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환자의 보호자의 생각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 ICU 자리를 arrange하도록 push할 것인지, lab을 자주해서 조금이라도 보충해 줄 것이 있으면 보충해주고 I&O도 맞춰주고 vital sign monitoring할 것인지 등 생사를 두고 의사가 결정해야 할 것이 많은데, 죽음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환자의 불편감이 neglect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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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게 생겼는데 죽을 사람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말들을 한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데 나는 왜 그 말을 들으면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것일까? 늘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면 나의 능력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 최고의 노력과 management는 환자가 죽기 직전에야 이루어진다.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