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2 - Transition 2014-2015/일상을 살아가다 0.5

슬기와의 저녁 식사

슬기엄마 2014. 5. 24. 21:39


엄마가 소개해 준 곳으로

슬기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가격은 꽤 비쌌지만 

자식한테 뭘 사줄 때는 그런 걸 안 따지게 된다. 

주문을 하고

하릴없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기분이다. 

잘 컸다. 흐뭇하다. 



슬기가 태어나던 해 나는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슬기 세살 때 의대에 편입을 했으니 

어렸을 적 재롱피우고 이쁜 짓 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슬기는 엄마가 다 키워주셨다. 

애가 제대로 잘 크고 있는지 어쩐지 챙길 겨를도 없이 나 살기 바빴다.

시험기간이 언제인지 소풍은 갔다 왔는지 성적은 어떤지 

그런 건 신경도 안썼다. 

의대 동기들보다 한참 나이를 더 먹은 나는 

내 신상 하나 유지하는 것에 급급했다. 



의대를 다니던 때부터

1주일간 연속되는 분기시험기간이면 

밤세고 시험공부를 하느라 집에 안가기 일쑤.

인턴 레지던트 때는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 가끔 집에 가서 갈아입을 옷을 챙겨오는 정도.

펠로우 때도 낮에는 환자보다가 밤에는 논문 써야 한다며 비슷한 생활.

집에 안 들어가고 병원 귀신에 되어 살았던 그런 생활의 정점은 

임상조교수가 되어 환자 폭탄을 맞고 버티던 올 2월까지 계속 되었다. 



나 하나 건사하느라 

애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도 몰랐다.

고2가 된 슬기.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다가 내가 슬기에게 묻는다. 



나 : 너 성적은 괜찮니? 대학은 갈 수 있는거지? 

슬기 : 그럭저럭. 근데 이번 1학기 중간고사랑 모의고사랑 망쳐서 사실 상태가 안좋아. 

나 : 국영수는 잘 하니? 내신은 어때?

슬기 :수학이 좀 약해. 내신은 안좋아서 수능으로 대학가야되. 

나 : 원래 수능으로 대학가는거 아니야?

슬기 : 수시랑 정시랑 전략이 달라. 

나 : 뭐가 다른거야? 



나를 위한 슬기의 입시 특강은 밥 먹는 내내 계속 되었다. 

나는 슬기의 설명을 다 듣고 

할 수 있는 말이 한마디 밖에 없었다. 



나 : 그러니까 너가 잘 알아서 하고 있는거네. 

슬기 : 지금으로선 이렇게 하는게 최선이야. 

나 :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면 되. 어떤 책이든 3번만 반복해서 읽으면 몽땅 다 알 수 있대. 

슬기 :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인것같아. 

나 : 너 할수 있는만큼 해. 그리고 앞으로 평생 네가 좋아하는거 하고 살아. 내가 밀어줄께. 



돌아오는 길에 버스커 버스커를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 

멋진 연주 음악이 흐른다. 분위기 짱이다. 


나 : 이정도면 나도 피아노로 칠 수 있겠는데.

슬기 : 이건 피아노로만 치면 분위기가 전혀 없어. 현악기가 들어가야 분위기가 살지.

나 : 지금 나오는건 관악기 같은데 뭐지? 트럼펫인가? 

슬기 : 오보에 같아. 


앨범 내지를 찾아보더니 오보에가 맞다고 한다. 


나 : 와 너 대단하다. 그렇게 듣기만 해도 음색으로 악기를 구분할 줄 아네? 

슬기 : 오보에가 인간의 음색과 가장 유사한 관악기래. 

나 : 와 너 그런 것도 알아?

슬기 : 학교 음악시간에 배웠어. 고등학교 교육 중요하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것만 알아도 평생 사는데 지장없어. 수업 열심히 들어야 해. 



우리는 비싼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고 음식점 주위 산책로를 걷다가 집에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슬기는 11시에 홍진호 나오는 프로그램 봐야 한다면서 그때까지만 공부하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했다. 



자식이 다 커서 

학교 열심히 다니는거 중요한 줄 알고 

건강하고

지 몸뚱이 하나 건사 잘 하고 

적절하게 현실과 타협하여 미래를 계획할 줄도 알고 

그렇게 무사히 성장한것을 보니 

마음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내 곁에서 무사히 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그 누군가에게는 미안하였다.  


엄마를 생각하면

재미있고

열심히 살고 

마음도 따듯한 사람이라는 기억을 주고 싶다. 

엄마는 언제나 내편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를 믿게 해주고 싶다.

그럴려면 성적얘기는 하면 안된다. ㅎㅎ 



슬기 때문에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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