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나는 고발한다, 내 형제를

슬기엄마 2011. 2. 27. 22:30

나는 고발한다, 내 형제를

 

일하다 보면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영 마음에 거슬리는 때가 있다. ‘과연 이런 사람도 같이 일하는 의사라고 말할 수 있는지회의적일 때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1년차라서 나에게 이렇게 함부로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괜한 자격지심일까
?

여러 환자들, 특히 노인 환자들은 여러 과 진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환자를 두고 consult transfer 등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내 환자 때문에 다른 과 의사들과 접촉하면서 부탁도 하고 문의도 하는 일은 다반사다. 불행히도 아직 1년차라 그런지 내가 다른 과 의사들의 청탁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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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러 과의 의사들을 접촉하다 보면 의사들간에 서로 예의를 갖추어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씩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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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 의사에게, 특히 1년차 레지던트에게 오전, 오후 회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Staff 선생님과 함께 도는 오전 회진이 환자에 대한 치료방침이 결정되는 시간이라면 오후 회진은 환자들의 사소한 불평도 들어주고 의료진의 입장도 설명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환자를 진료해 볼 수 있는 다소의 여유로움이 주어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잘 운영하는 것이 1년차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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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한 환자에 대한 회진 시간은 참 고역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차마 과 이름을 밝히지는 못하겠다)에서 hyponatremia, ARF를 이유로 transfer된 환자는 2주간의 management를 통해 electrolyte가 안정되고 Cr level upper normal level에서 유지되어 다시 원래 과로 transfer하기로 하였다. 내과적으로는 더 이상 도움을 줄만한 것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환자는 1주일 이상 내과 환자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과의 staff이 해외 학회를 간 상태라서 환자를 아직 transfer in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쪽 파트의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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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파트에서도 매일 회진을 돌고 드레싱도 하고 있으니 어차피 마찬가지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환자를 누가 담당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comprehensive management를 제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나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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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 main lesion의 상태는 어떤지, 앞으로 어느 정도의 치료가 더 요구될 것인지, 지금 왜 이렇게 아픈 것인지 등 환자가 궁금해하는 내용들에 대해 내가 지금의 proceess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그건 **과 선생님께 여쭤보세요라고 말을 돌려야 하니, 명색이 주치의로서 얼마나 체면 안 서는 일인가! 물론 내가 그 환자의 병에 대해 간략하게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그 병이 무슨 병인지 밝히면 어느 과인지 드러나기에 역시 밝히지 않는다), 환자 상태와 연관된 적절한 치료방침이나 예후를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과에서 나에게 그런 정보를 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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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학회에 갔던 staff 선생님은 돌아왔다. 환자도 원래 치료 받던 과로 옮겨달라는 요구를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쪽 파트에서는 차일피일 미루며 환자를 받지 않았다. 슬슬 화가 나가 시작했다. 나는 현재의 상태를 내과적으로 설명하고, 내과적 문제만 보면 opd f/u 도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지만, 그쪽 파트에서는알겠다고 대답할 뿐 transfer in 하지 않았다. Staff 선생님께서 내과 문제를 다 해결하면 받으라고 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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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도대체 환자는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staff notify는 제대로 한 것인지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회진 때 guiding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staff의 의견이 결정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했는지 짐작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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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과의 레지던트가 일하는 이러한 방식 때문에 최근 10여일간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이다. 그가 나보다 윗년차라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를 보냈으면 그에 상응하는 관심과 예의를 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예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자에 대한 활발한 정보 교환을 통해 내과적 문제와 **과적 문제를 검토하고 어느 과가 주된 진료를 담당하는 것이 적절한지 결정하는 process를 밟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정도의 interdisciplinary discussion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환자는 대학병원에 오는 것이고 의료진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아닐까
?

환자보다는 의사를 주로 접하는 진단방사선과 1년차 동기, 불과 몇 달 안 되었지만 이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누가 문제 있는 의사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과가 함께 일하는 응급실, 응급의학과 2년차 선생님은 병원에 있는 누군가를 사귀려면 자기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말한다. 환자를 대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의사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는 방식을 통해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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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ionalism
을 논하는 최근의 논의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peer group review. 전문가 스스로 내부 평가를 수행하는 것이 quality control에 필요하고내부자 고발이 갖는 부담과 위험성을 제도적으로 합리화하여 전문가 집단의 도덕성과 지적 성찰을 유도하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늘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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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의 의사 집단은 아직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고사하고 평가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취약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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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내부적으로는 위계질서를 따지고 충성 경쟁을 하면서도 다른 과와 함께 일하는 현장에서는 예의가 없는 의사, 혹은 그런 풍토를 조장하는 그룹이 있어 의사들의 진료문화를 오염시키고 있는데도 이를 교정할만한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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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라고 예외겠는가? 다른 파트의 누군가가 내가 일하는 방식에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면전에서 얼굴 붉히며 말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 노릇이겠는가
?

내칠 것은 내쳐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교정하지 않고 묻어버리면 안에서 계속 썩으면서 다른 것들까지 오염시킬 것이다. 이러한 악습과 잘못된 내부 관행을 스스로 정화시키지 못하는 한 의사 집단은 결국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환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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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저런 사람도 의사냐라는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도 돌아올 수 있겠지만, 그 화살을 맞지 않으려 애를 쓰는 동안 결국 나는 발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