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2 - Transition 2014-2015/가운을 벗고 사회로 나오다 0.5

각종 검사에도 진단이 안될 때가 있다

슬기엄마 2014. 5. 24. 11:37


엄마는 
심하지 않은 척추측만증이 있었다.
허리는 남들보다 그렇게 심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디스크가 튀어 나와있었다. 
약 먹으면 괜찮고 무리하면 다시 아프고 그런 정도. 
척추관 협착증도 있었다. 아직 수술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허리아프다고 말할 때 흔히 발생하는 구조적인 이상이 다 있었지만 
나이에 비해 그 자체 상태가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오른쪽 고관절은 선천적인 구조 기형으로 다리뼈와 골반뼈의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것은 유전이 되는 것이라 내 고관절도 그런 구조이고 내 동생도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병은 평생 사는만큼 살다가 닳고 닳아 관절면과 뼈가 잘 맞지 않으면 결국 고관절 치환술을 해야 하는 병이다. 엄마는 10년전에 수술을 받았고 

작년 12월에 닳아진 관절면을 교체하는 재수술을 받으셨다. 

관절을 바꾸고 나니 오른쪽 다리가 약간 길어졌다. 눈에 띨 정도는 아닌데 골반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약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심각한 차이는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인들이 겹쳐서

허리 통증과 관절 통증과 무릎 통증으로 통증이 돌아다니면서 나타난다.

사람은 몸 어디 한군데가 아프면 나도 모르게 다른 쪽을 더 써서 

아픈 쪽으로 일을 안하게 하고 통증을 안 느끼게 하려는 

자체적인 보상작용을 한다.

수술을 해야할 정도로 심한 곳은 오른쪽 고관절 한 군데지만, 

위로는 허리, 아래로는 무릎으로 통증이 전파된다. 근육도 아프고 근육을 뼈와 붙여주는 접착 부분의 인대에도 통증이 전파된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퇴행성 변화가 더해진다.


그래서 엄마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위의 여러 요인 중에 어떤 요인이 통증을 핵심적으로 유발하는 요인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여기가 좋아지면 저기가 나빠지고 

이번에는 이렇게 해주니 좋아졌는데, 다음에는 같은 방법으로 치료를 해도 좋아지지 않는다.

아마도 통증의 악화요인들이 시시때때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 저기 통증 조절을 잘 한다는 의사들을 찾아 많이도 돌아다녔다.

잠시 좋아지는 듯 했으나 언저리에 다른 종류의 통증이 발생한다.

그래서 엄마는 이제 허리 다리가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잘 안하신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강화시켜야 

뼈나 관절, 인대에 부하되는 힘을 분산시킬 수 있고

그래야 통증을 이겨낼 수 있으니 늘 운동을 강조한다. 

그러나 허리 다리 무릎이 아프니

기본적으로 운동하기가 힘들다.

엄마는 몸이 아플 때마다, 살이라도 빼야 아픈 곳에 부담을 덜 주게 될거라며 안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그러나 평생 내 몸에 붙어다닌 지방세포는 몇주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근육은 쉽게 빠져나가고 다시 살이 찌면서 지방이 더 쉽게 붙는다. 근육량이 감소하면 몸의 대사율이 떨어져서 나중에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니까 음식 먹는 걸 매우 주의하셨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몸에 공급되는 영양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근육양이 줄고 영양 상태가 나빠지면 통증도 더 민감하게 느끼게 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10년전 첫 수술때에는 요양병원에 가실 필요도 없고 재활치료도 받지 않았다. 

병원에서 한달간 먹으라고 준 진통제도 다 드시지 않고

그냥 잘 회복하셨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재수술을 하니, 수술 범위도 더 넓지 않고 간단한 수술이었는데 - 물론 모든 재수술은 수술 부위 결합조직의 상태가 변해서 수술을 하기에 용이하지는 않지만 - 수술 후 통증이 조절되지 않고 아픈 기간이 오래오래 지속되었다.

서너달 그렇게 아프니 

엄마가 통증 때문에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래도 일상은 꾸려가실 수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2달 사이에 몸무게가 10kg이나 감소하였다.

첨에는 살이 쑥쑥 잘 빠진다고 좋아하셨는데

한달이 지나니 영 맥을 못 추고 힘들어 하시기 시작했다.

입맛도 없고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엄마는 진짜 우울증이 온 건지, 세월호 사건에도 너무 많이 슬퍼하시고, 형제들끼리 모여 1박 2일로 놀러가셨다가 싸우고 돌아오시기도 했다. 감정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았다. 




내년이면 70이 되는 엄마.

노인의 체중감소 전신 쇠약감. 

진단하기 어려운 증상이다. 너무 비특이적이다. 뭐부터 검사를 해야할지 감을 잡기 어려워 과다한 검사를 하게 되는 증상이기도 하다. 

나도 

병원에서 정식으로 의사 가운 차려입고 

진료실 컴퓨터 앞에 앉아 

내 눈앞에 있는 환자를 보고 집중하여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엄마에 대한 제대로 된 검사를 생각해 내기 어려웠다.

피 한번에 뽑아서 할 수 있는 검사도 항목을 까먹어서 다시 피를 또 뽑고

과도한 검사를 안하고 싶어서 검사를 최소한으로 하다보니 병원에 자꾸 자꾸 가게 되고 찌질찌질 검사를 하게 되니 엄마가 그런 상황을 더 힘들어 했다.




뇌하수체 종양이라고 생각했던 병변도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다시 MRI를 찍어보니 명확하지 않았다.

엄마의 주관적 증상, 객관적인 검사 결과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 

호르몬 수치가 그렇게 낮지 않은데 관련된 증상이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의사선생님은 약을 줄 생각이 아니셨던 모양인데, 부탁을 드려 약을 처방받아 먹기 시작하였다. 

좀 경과를 봐야 할 것 같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 


1. 아무리 고민하고 검사해도 당장 진단이 안되는 병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중에 되돌이켜 볼 때 진단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2. 몸이 편치 않은 노인에게 운동을 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환자는 의사가 강조하면 최소한 그 지침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의사가 운동을 강조하면 반짝 따라한다. 

    의사가 그런 말 안하면 절대 안한다. 

    간호사나 물리치료사 등 의사가 아닌 사람이 말하면 잘 안 따라한다. 

 

3. 아무리 의사 가족이어도 병원을 바꾸면 무의미한 검사가 반복되기 마련이다. 

    1주일 사이에 크게 바뀌는 피검사 항목은 감염 아니고서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엄마는 호르몬 검사를 다시 다 했다. 

    MRI도 결국 다시 찍었다.

    1주일 내에 30분이 넘는 뇌 MRI를 두번 찍는 것은 노인네에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4. 외래 진료실에서 의사는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5. 아무리 부질없다고 강조해도 몸이 아픈 사람들은 건강보조식품을 사 먹는다. 

   그런 때 드는 돈 수십만원은 자기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만큼의 돈을 병원에서 내게 되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6. 내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절친하지 않은 관계라 하더라도

   그 누군가의 격려와 기도는 정말 큰 힘이 되고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