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대신 청탁

슬기엄마 2013. 12. 30. 23:15


환자는

전이성 유방암으로 꽤 오래 치료를 받으셨다.

좋아지고 나빠지기를 반복하니

때론 우울해하고 슬퍼하고 의기소침해 지기도 했지만 

매번 꿋꿋히 힘을 내서 다시 치료 받는 분이다.

남편과 아들의 돌봄도 극진하여 내심 내가 참으로 존경하는 가족이기도 했다. 

의사입장에서

마음이 가는 환자였다. 



늘 남편 혹은 아들이 환자 진료에 함께 오셨는데

최근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오지 않는다.


남편분은 요즘 바쁘신가봐요?

최근 들어 병원에 못 오시는거 같네요.


남편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어요.

지금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그 다음은 환자가 말을 잇지 못한다. 

환자가 울먹이니 더 이상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남편 분 상태는 어떠세요? 

담당 선생님은 만나 보셨나요?


내가 물어놓고도 미안하다.

지금 내 환자가 그럴 형편은 못되기 때문이다. 

지금 환자도 여러 모로 치료가 잘 안되고 몸도 힘든 형편이라 

병원에서 남편 간호하며 곁에서 지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도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

회사를 자주 비우기가 어렵다.

아버지 주치의 회진 시간을 맞춰서 병원을 나오기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병원 출입을 하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일하기에 자유로운 부서가 좋은데

요즘 부서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신참이라 눈치도 많이 보이고 

인수인계도 오래 걸리고 있다고 한다.

여러모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아직은 병원에 드나들 정도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한다.



환자 남편의 차트를 보니

급성백혈병으로 첫번째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2주가 막 지난 상태이다.



환자와 아들은 

백혈병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전이성 유방암 치료하는 거랑은 아주 다른 거라고 말씀드렸다.


유방암 치료는 외래에서 항암치료 하고 특별한 일 없으면 입원도 잘 하지 않는데

백혈병 항암치료는 일단 치료 초기 병원 재원일수가 길고 피검사도 많이 하고 골수검사도 자주 하고 퇴원도 쉽게 할 수 없는 병이라 지금 계속 입원해 계시는 거라고 설명드렸다. 


유방암 이해하기도 힘든데

이들은 또 백혈병에 대해, 그리고 백혈병 치료과정에 대해 이해해야만 했다. 



아직 환자의 치료과정과 예후에 대해 주치의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선생님을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환자는 최근 약을 바꿔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독성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여러 증상이 많다.

특히 우울감이 심하다.

이런 분이 아니었는데... 더 독한 항암제를 맞고도 늘 긍정적이고 잘 이겨내는 분이었는데...

이번 치료 과정에는 합병증과 독성이 많이 나타난다.

당연하다.


우울감이 심해서 정신과 진료를 권유했지만 

환자는 지금 다른 여러과를 다니기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다며 협진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병원에 한 번 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혼자 거동하는 것이 힘들어 아들이 데려다 줘야 하는데 그러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어설프게 내가 약을 드리고 오늘 2주만에 오시게 했는데 효과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우울하고 힘든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오늘 외래에서 환자는 지난주처럼 우느라 대답을 못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약을 적절히 바꿔주는게 좋을 것 같은데, 환자가 지금 그럴 여력이 없다며 정신과에 안 가신다.  



환자는

내 병이 나빠지고

치료가 잘 안된다고 해도

이렇게 속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남편의 병이 무엇인지

특정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골수검사를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남편은 퇴원하지 못하고 왜 계속 병원에 있는지 

왜 그렇게 항생제를 많이 쓰고 피검사를 많이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태라는 점이 가장 힘들고 우울하다고 했다. 

나 때문에 평생 애쓴 남편을 위해 당신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정말 미안하고 슬프다고 했다. 

내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편 환자의 주치의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  

이 가족의 형편, 내 환자도 지금 치료가 잘 안되고 있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라서 부인과 아들이 아버지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전하고 부탁을 드리는 것 정도이다. 

담당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다. 




환자 중에

자신이 치료받다가

배우자가 암에 걸려 

함께 치료받는 부부들이 꽤 있다.

같이 식이조절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고 

치료 과정 중에 서로 챙겨주면서 병을 이겨나가기 위해 함께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강력한 치료 동맹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우리 환자 남편분의 골수가 깨끗해지고 퇴원하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 환자의 이번 치료도 효과가 좋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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